요즘 주짓수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릴스, 숏폼 영상에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술을 본다. 10초~1분 안에 요약된 ‘핵심’만 빠르게 소비한다. 효율적일까? 어쩌면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지고, 영상 속 움직임이 내 몸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빠른 정보는 빠르게 들어오지만,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기술서를 꺼낸다.
종이 위에 펼쳐진 사진과 텍스트는 이상하리만치 ‘집중’하게 만든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지금까지 본 기술과 앞으로 남은 페이지가 직관적으로 보인다.
책 속에서 내가 멈춘 지점이 ‘여기’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건 디지털 화면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다.

디지털 피로감에서 벗어나는 시간

디지털 기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눈이 뻑뻑해지고, 집중이 흐트러지며, 이유 없는 불안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른바 ‘디지털 피로감’이다.
정보가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들어와서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는 상태다.

종이책을 펼치면 그 과부하에서 벗어난다.
형광빛 화면 대신 차분한 종이 질감, 손끝에 느껴지는 페이지의 무게,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여백이 만들어주는 호흡.
그 속에서 눈은 한결 편안해지고, 정신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책이 주는 상상력과 창의성

영상은 ‘정답’을 바로 보여준다.
그래서 상상할 틈이 없다.
반면 기술서는 사진과 글을 보며 머릿속에서 움직임을 그려야 한다.
“이 각도에서 손목을 잡으면… 상대 무게 중심이 이렇게 이동하겠군.”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매트 위에서 그 움직임을 내 것으로 만든다.

Screenshot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재해석하고 변형하는 창작자가 된다.
그게 곧 나만의 스타일이 되고, 시합과 실전에서 차이를 만든다.

느리지만 오래 가는 힘

빠른 정보는 오늘의 스파링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책 속에서 차근차근 익힌 기술은 내 몸에 깊이 스며들어,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매일 찍어먹는 인스턴트 에너지바와, 오랫동안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식사의 차이 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휴대폰을 멀리 두고 책장을 연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며 ‘느리지만 오래 가는 힘’을 쌓는다.

📚 최근에는 2015년 출간한《De la Riva Jiu-Jitsu 170 Techniques》, 2018년 출간《Brazilian Jiu-Jitsu Lee Bros 208 Techniques》 같은 기술서를 보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숨이 찰 만큼 방대한 기술들이 한 권, 한 권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의 진짜 가치는 양보다 ‘깊이’에 있다. 한 장, 한 장 곱씹으며 읽는 동안 당신의 주짓수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